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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역사상식 회차 · 2026년 11월 기준

알아야 할 배경지식 · 목차 13/30 조선 후기 진경산수와 풍속화: 정선·김홍도·신윤복

조선 후기 진경산수와 풍속화: 우리 땅과 사람을 우리 눈으로 그리기 시작한 때

정선·김홍도·신윤복이 중국 그림을 본뜨던 데서 벗어나 우리 산천과 이웃의 삶을 그린 변화를 살펴봅니다

중요도 5분 읽기#공통 교양
정선, 「인왕제색도」
정선, 「인왕제색도」, 1751년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읽기 전에 먼저 풀어 보세요

먼저 한 문제

조선 후기 정선이 개척한, 우리나라 산과 강을 직접 소재로 삼은 산수화를 무엇이라 부를까요?

알아야 할 배경

18세기 조선 후기에 그림의 소재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그전까지 산수화(산과 물을 그린 그림)는 막연한 중국 자연을 다루는 일이 많았는데, 이 무렵 화가들이 우리 산천과 우리 이웃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 진경산수화1: 우리나라 산과 강을 직접 소재로 삼은 산수화입니다. 고려 때부터 이어진 실경 산수화(실제 경치 그림) 전통 위에, 18세기에 새로 유행한 남종화법2(중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산수화 기법)을 더해 정선이 개척했습니다. 금강산과 관동 지방, 서울 근교가 가장 많이 그려졌습니다.
  • 정선(1676~1759): 금강산과 영남, 서울 근교를 다니며 산천의 특징을 그렸습니다. 1751년 서울 인왕산을 그린 「인왕제색도」에서는 둥근 바위의 무게감을 짙은 먹을 여러 번 덧칠하는 적묵법3으로 나타냈습니다. 1734년 작 「금강전도」는 금강산 안쪽 봉우리들을 하나의 큰 원 안에 묶었습니다. 경치를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니라, 받은 감동을 살리려고 화면을 다시 짠 것이 특징입니다.
  • 김홍도: 중인 신분의 화원(나라에 속한 직업 화가)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단원 풍속도첩』 25점에는 선비·농부·장인·상인이 일하는 모습과 서당, 씨름, 우물터, 혼례 같은 일상이 담겼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풍속화4에 익살과 풍자를 더해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 신윤복: 『혜원전신첩』 30점은 주로 기생과 한량의 남녀 나들이, 양반 사회의 풍류를 그렸습니다. 「월하정인」, 「단오풍정」도 이 화첩에 들어 있습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서울 도시의 놀이 분위기가 짙게 배어 있고, 가늘고 부드러운 선과 한복의 고운 색이 돋보입니다.
  1. 1진경산수화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 산과 강을 직접 소재로 그린 산수화입니다. 정선이 개척했습니다.
  2. 2남종화법 18세기 중국에서 들어와 조선에 새로 유행한 산수화 기법입니다. 진경산수화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3. 3적묵법 짙은 먹을 여러 번 겹쳐 칠해 무게감을 내는 기법입니다. 정선은 「인왕제색도」의 바위를 이렇게 그렸습니다.
  4. 4풍속화 사람들이 일하고 노는 생활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화첩이 이 갈래에 듭니다.

요즘 왜 다시 중요할까

진경산수화는 실제 경치를 사실대로 그리려 한 근대 지향적 시도이자, 한국적 화풍을 세운 그림으로 평가받습니다.

  • 나라가 지키는 유산입니다. 「인왕제색도」는 1984년 국보로 지정됐고, 지금은 나라 소유로 국립중앙박물관이 관리합니다.
  • 조선 사람의 생활을 보여 주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개항기 화가들도 김홍도의 화첩을 베껴 그렸습니다.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는 1885년에 들어온 모사 화첩이, 영국박물관에도 다른 화가가 베낀 풍속화첩이 있습니다. 당시 조선을 찾은 서양인들이 이런 그림을 좋아했다는 흔적입니다.
  • 영향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진경산수의 정신은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생활 주변 풍경을 그리는 사경 산수화로 이어졌습니다. 신윤복의 화풍은 1930년대 이용우의 인물화에까지 닿았습니다.

다만 중국풍을 완전히 버렸다고만 보면 곤란합니다. 진경산수화는 중국에서 온 남종화법을 바탕으로 했고, 정선도 중국 옛이야기를 담은 고사도를 많이 그렸습니다. 정선을 따르던 화풍이 틀에 박히자, 18세기 말 강세황은 실제 경치에 맞는 사실적 기법을 강조하며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진경산수화는 19세기 중반 김정희를 중심으로 사의적(그리는 사람의 뜻을 앞세운) 문인화풍이 힘을 얻으면서 쇠퇴했습니다. 『단원 풍속도첩』을 두고도 해석이 갈립니다. 작품마다 솜씨 차이가 있어, 짧은 시간에 많이 그린 결과라는 해석과 일부는 모작(베낀 그림)이라는 추정, 화첩 전체가 후대의 밑그림이라는 주장이 함께 있습니다.

면접에서 이렇게 써먹기

'일하는 방식', '현장 경험', '차별화'를 묻는 질문에 이 시기를 근거로 쓸 수 있습니다.

  • 현장을 직접 보기: 정선은 금강산과 서울 근교를 다니며 그렸습니다. 김홍도는 1788년 정조의 명으로 금강산 등 영동 9개 군을 50여 일 동안 답사하며 경치를 그렸습니다. 남의 그림을 본뜨기보다 직접 본 것에서 출발하는 태도로 이어서 말할 수 있습니다.
  • 본 것을 정리해 전달하기: 정선의 그림은 경치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핵심을 골라 다시 짠 것입니다. 현장에서 모은 정보를 상대가 알아보기 쉽게 정리하는 일과 닮았습니다.
  • 배우되 내 것으로 바꾸기: 정선은 중국 화법을 우리 산에 어울리는 필법으로 바꿨습니다. 신윤복은 김홍도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소재와 구성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성공한 방식도 굳어지면 비판받는다는 강세황의 사례까지 더하면 균형 잡힌 답이 됩니다.

면접에서 왜 중요한가

우리 것을 우리 눈으로 보고 현장에서 출발한 이 시기의 변화는 일하는 방식·현장 경험·차별화를 묻는 면접 질문의 근거가 됩니다.

세 문제로 확인하기

복습 1 / 3

김홍도의 『단원 풍속도첩』에 담긴 그림으로 맞는 것은 무엇일까요?

복습 2 / 3

19세기 중반 진경산수화가 쇠퇴한 까닭으로 맞는 것은 무엇일까요?

복습 3 / 3

정선의 「인왕제색도」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무엇일까요?

출처 6개 보기
  1. 1진경산수화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2정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3김홍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4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5. 5신윤복 필 풍속도 화첩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6. 6정선 필 인왕제색도 - 국가유산포털

이 회차는 AI가 출처를 바탕으로 초안을 쓰고 운영자가 확인해 발행했습니다. 기사 문장을 옮기지 않고 사실만 새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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