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기 전에 먼저 풀어 보세요
먼저 한 문제
신고전주의 화가들이 그림의 본보기로 삼은 것은 무엇일까요?
알아야 할 배경
신고전주의1는 1750년 무렵부터 나타난, 고대 그리스·로마를 본보기로 삼은 미술 흐름입니다. 로마 유적 폼페이가 발굴되고 독일 학자 빙켈만이 1764년 고대 미술의 역사를 정리한 책을 내면서, 미술·건축·디자인에서 고전 양식이 크게 꽃피었습니다.
- 대표작은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1784)입니다. 기원전 7세기 로마와 알바롱가가 다툴 때, 군대를 보내는 대신 두 도시가 세 명씩 뽑아 싸우게 했다는 로마 전설을 그렸습니다. 로마의 호라티우스 삼형제가 아버지가 내민 칼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맹세하고, 오른쪽에서는 여인들이 웁니다. 두 집안이 혼인과 약혼으로 얽혀 있어 누가 이기든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 때문입니다.
- 그림은 질서를 앞세웁니다. 남자들은 뒤쪽 기둥처럼 곧은 직선으로, 여인들은 아치처럼 곡선으로 그렸습니다. 붓 자국을 감추고 흐린 색을 써서 기법보다 이야기에 눈이 가게 했습니다. 개인의 정보다 나라를 위한 의무를 앞세운 장면입니다. 다비드는 이 그림을 로마에서 그렸고, 그림은 비평가와 대중에게 곧바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 다비드의 제자 앵그르는 인체와 고전 미술 공부를 중심에 둔 아카데미(미술 교육 기관) 전통 속에서 자랐고, 엄격한 고전주의를 지킨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화풍은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2와 대조를 이뤘습니다.
낭만주의는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시작해, 계몽주의 시대의 규범과 자연을 과학으로만 풀려는 태도에 맞선 흐름입니다. 고전의 절제와 형식 대신 감정 표현을 앞세웠습니다.
- 제리코는 1819년 살롱3(정기 미술 전시회)에 「메두사호의 뗏목」을 냈습니다. 프랑스 배가 난파해 150명이 임시 뗏목에서 13일을 떠돌았고, 살아남은 사람은 15명뿐이었던 실제 사건입니다. 제리코는 생존자를 만나고 축소 모형을 쓰고 시체 안치소와 병원을 찾아가며 8개월 만에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1757년 숭고4(마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강한 감정을 일으키는 예술 효과)를 설명했습니다.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숭고의 원천이라는 생각입니다. 터너가 그린 바다 폭풍과 산 풍경이 그 예로 꼽힙니다.
- 음악도 개성과 감정, 극적인 표현을 좇았습니다. 슈베르트는 고전에서 낭만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중요한 작곡가로 꼽힙니다. 폴란드의 쇼팽은 피아노곡에 깊은 감정을 담았고, 마주르카 같은 민속 춤곡으로 민족의 색채를 처음 들여온 작곡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요즘 왜 다시 중요할까
두 흐름은 옛 미술사로 끝나지 않고, 오늘의 건물과 예술을 보는 눈에 남아 있습니다.
- 신고전주의는 건축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테이트 미술관은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리버풀의 세인트조지 홀을 그 예로 듭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공공건물에 이 흐름이 남아 있는 셈입니다.
- 낭만주의는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거나 뒤흔드는 효과도 예술의 정당한 역할이라는 생각을 키웠습니다. 테이트 미술관은 이 생각이 오늘날 미술에도 기본으로 남아 있다고 설명합니다. 「메두사호의 뗏목」도 끔찍한 장면을 정면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 음악에서는 자연·문학·미술처럼 음악 밖의 것에서 영감을 얻는 흐름이 커졌습니다. 정해진 틀보다 표현을 앞세우는 태도가 음악까지 번진 것입니다.
다만 둘을 딱 잘린 대결로만 보면 곤란합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메두사호의 뗏목」의 피라미드 구도와 정밀한 소묘가 고전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합니다. 감정을 터뜨린 그림에도 질서의 뼈대가 들어 있었던 셈입니다. 이 그림을 두고 당시 평론가들도 빠져든 쪽과 거부감을 느낀 쪽으로 갈렸습니다. 거꾸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남자들 옆에 슬퍼하는 여인들을 함께 그려, 의무와 슬픔을 한 화면에서 맞세웠습니다.
면접에서 이렇게 써먹기
'원칙과 유연성', '규칙과 창의성', '조직과 개인'을 묻는 질문에 두 흐름을 근거로 쓸 수 있습니다.
-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는 개인의 정보다 나라를 위한 의무를 앞세운 장면입니다. 조직의 목표를 위해 정해진 원칙을 지키는 태도와 이어서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림 한쪽에서 슬퍼하는 누이들처럼, 원칙 때문에 가려지는 사람의 사정도 있다는 점을 함께 말하면 답이 깊어집니다.
- 제리코는 생존자를 직접 만나고 축소 모형을 쓰며 그림을 준비했습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결과물도 꼼꼼한 현장 조사에서 나온다는 사례로 들기 좋습니다.
- 둘 중 하나만 고르기보다, 뼈대는 원칙으로 세우고 그 안에서 사람의 마음을 읽는 쪽이 낫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메두사호의 뗏목」이 고전의 구도 위에 강렬한 감정을 담았다는 점이 좋은 근거입니다.
면접에서 왜 중요한가
원칙과 유연성, 규칙과 창의성의 균형을 묻는 면접 질문에, 질서와 감정이 맞선 두 미술 흐름을 근거로 답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세 문제로 확인하기
복습 1 / 3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에서 다비드가 질서를 드러낸 방법으로 맞는 것은 무엇일까요?
복습 2 / 3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무엇일까요?
복습 3 / 3
낭만주의 작곡가 쇼팽에 대한 설명으로 맞는 것은 무엇일까요?
출처 6개 보기
이 회차는 AI가 출처를 바탕으로 초안을 쓰고 운영자가 확인해 발행했습니다. 기사 문장을 옮기지 않고 사실만 새로 썼습니다.